유엔을 비롯해 유네스코와 같은 다자간 기구들의 평가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까요? 상장기업이라면 주주총회나 재무제표, 혹은 주가의 흐름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평가가 가능하고, 정부나 국가기관이라면 감사의 형태로, 혹은 각종 선거를 통해 직·간접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텐데요. 다자간 기구의 경우에도 정기적으로 조직 운영과 재정 관련 보고서를 내고 있어요. 하지만 그 보고서만으로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아 수행되는 수많은 프로젝트와 전 세계 인재들이 모인 조직 체계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잘 되고 있는 점과 고쳐야 할 점은 없는지를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거예요. ‘바깥’에서 수행하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평가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죠. 그런 평가의 기회가 있다면 해당 조직의 더 나은 운영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조직이 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거예요. 바로 그런 평가를 이번에 유네스코가 받았고 지난 달에 결과가 공개되었습니다. 유네스코가 받아든 성적표엔 어떤 말들이 적혀 있을까요? 그 따끈따끈한 내용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강상규 기획조정실장의 글을 바탕으로 기획되었습니다.
다자기구 독립 평가기관(MOPAN)의 유네스코 평가
다자기구를 평가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까다로운 일입니다. 많은 국가들이 크든 작든 기구의 활동 재원을 부담하며 참여하고 있고, 기구의 전략에 동의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목표 또한 각기 갖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누가, 어떤 항목을, 어떤 관점에서 평가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모두 같을 순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자기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한데요. 각국이 어떤 기구에 얼만큼의 예산을 투입할지를 결정하는 데도, 그러한 예산 집행이 목표한 바를 달성하는 데 제대로 기여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데도 신뢰할 만한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해당 기구가 어떤 전략을 갖고 활동을 펼쳐 왔는지, 사업들이 전략 수행을 잘 뒷받침하고 있는지, 조직이 한정된 예산을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있는지가 객관적으로 평가되고 투명하게 공개될 때, 각 공여국들은 더 큰 믿음과 기대를 갖고 예산을 집행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기구의 활동에 동참할 수 있을 겁니다.
다자기구 성과 평가 네트워크(Multilateral Organisation Performance Assessment Network), 즉 MOPAN은 다자기구들을 대상으로 바로 그런 평가를 객관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2002년에 설립된 이 기관에는 현재 한국을 비롯한 21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면서 유엔을 비롯한 전 세계의 다자기구들을 정기적으로 평가해 보고서를 내놓고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지난 2019년에 MOPAN의 평가를 받은 바 있고, 이번에 6년 만에 다시 평가를 받아 그 결과가 지난달에 공개되었습니다. 유네스코가 내놓은 553개 문서 자료와 파트너 기관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 156건의 인터뷰와 외부 기관의 컨설팅을 거쳐 작성된 보고서에서 잘 하고 있는 것과 나아지고 있는 것, 그리고 더 노력해야 할 것들을 몇 가지 간추려 보았는데요. 더 깊이 들여다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요약본(영문)이나 전체 보고서(영문)에서 자세한 내용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유네스코, 이건 정말 잘했어요 👍
- 가야 할 길을 보여주면서, ‘함께’ 갈 수 있는 방법도 실천했어요
보고서는 유네스코가 “규범적 역할과 프로그램적 역할을 결합하는 데서” 특별한 장점을 발휘한다고 분석합니다. 단순히 ‘이렇게 해야 해’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해 보자’라며 구체적인 실천 방안까지 제시함으로써 미래에 관한 통찰력과 리더십을 함께 발휘해 왔다는 뜻인데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의 허위정보 대응, 2021년의 ‘인공지능 윤리 권고’ 채택 등에서 이러한 면모를 잘 보였다면서 높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 더 촘촘하게 연결하면서 더 널리 퍼뜨리는 전략이 유효했어요
유네스코는 다른 어떤 다자기구보다도 더 넓은 영역을 포괄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복잡한 문제들을 총체적(holistic)이고 학제적인(interdisciplinary)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시너지를 내 왔다는 평가도 받았어요. 이러한 접근법은 기후위기와 교육의 미래 등 글로벌 과제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는 데도, 인권과 환경, 성평등 등의 이슈를 다양한 분야에서 주류화하는 데도 효과적이었다고 합니다. - 미래를 위한 정책 수립, 유네스코가 도와줄게요!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모두의 약속인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달성 시한이 5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실천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은 상황이에요. MOPAN은 유네스코 및 유네스코 산하의 여러 센터들이 각 전문 분야에서 고품질의 정책 자문을 제공하고, 수요자 중심의 통합적 개혁 역량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했어요. -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 그 출발은 유네스코로부터
유네스코는 “전 세계 개발 이행 체계 내에서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평가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되었어요. 보고서는 유네스코가 모두 9개 SDG 목표 달성 및 7개 SDG 목표 달성 지표를 관리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교육 분야 지속가능발전목표(SDG4) 달성을 위해 지속적인 교육 투자와 변혁을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했습니다. 유네스코의 카테고리1 기관들이 이 부분에서 많은 역할을 했으며,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교육 분야에서 발생한 불평등과 국가 간 격차를 지적하고 이를 해소하는 데 앞장선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해요.

+ 이 부분은 더 나아졌네요 📈
- 유네스코의 존재감, 대중 곁으로 한 발 더
지난 2019년 평가에서 유네스코는 소통 및 홍보 분야에서 좀 더 신속하고 효과적인 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는데요. 이번에는 이 부분에서 상당한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평가받았어요. 대대적인 홈페이지 개편 및 정보 제공 방식 개선 등 그간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기 위해 시행한 조치들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보고서는 각 분야에서 유네스코가 미치고 있는 영향력과 국가 단위에서의 성과를 효과적으로 알릴 여지가 더 남아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어요. - 자체 평가, 더 정확하고 독립적으로
2019년 평가에서 지적받았던 성과 모니터링 및 피드백 제공 방안에 대한 개선도 이루어졌어요. 감사국(Audit Office)은 더 많은 예산과 독립성을 확보해 믿을 만한 성과 감사를 진행하고 있고, 평가국(Evaluation Office) 역시 필요한 자금과 기능을 갖추고 유네스코의 주요 규범적 업무에 관한 평가 활동을 확대해 나가고 있어요. 보고서는 이 역시 더 나아질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으며 한편으로는 아직 미흡한 부분도 적지 않다면서 더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제안하고 있어요.

+ 더 나은 유네스코를 위해 이것만은 꼭!
- 더 단단하고 효율적인 유네스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미국의 반복되는 유네스코 탈퇴와 이로 인한 예산 압박 속에서 유네스코는 지속적인 조직 개혁의 압력을 받아 왔고, 다양한 영역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몇몇 분야, 특히 ‘위험 관리 체계’ 측면에서 유네스코는 여전히 취약점을 노출했고 다른 유엔 기구들과 비교해서도 뒤처져 있다고 지적하는데요.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면밀한 재정 관리와 모니터링 및 문제 제기 체계 수립 등을 포함한 개혁 작업에 더욱 속도를 높일 것을 주문했습니다. - 지역 네트워크를 보다 확실한 유네스코의 강점으로 바꾸어야 해요
광범위한 정책 분야에서 전문성을 제공하는 유네스코만의 강점은 현장 네트워크들과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각국 안에서도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텐데요. 이를 위해서는 네트워크들이 더욱 효율적으로 기능하면서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그 활동이 본부 전략 및 유엔 차원의 의제에도 잘 부합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각 지역 사무소를 중심으로한 유네스코의 방대한 현장 네트워크는 지난 몇 년간 유네스코 내부 개혁 작업의 주요 대상 중 하나였는데요. 보고서는 개혁 작업이 속도 측면에서, 그리고 일관성 측면에서도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이 부분에 더 관심을 가져 주기를 촉구했습니다. - 회원국들의 신뢰와 보다 유연한 활동 환경이 필요해요
유네스코가 처한 어려움이나 한계를 언급할 때마다 등장하는 재정 문제는 이번 평가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방대한 영역에서 유네스코가 전문성을 발휘하며 지식을 제공하고, 행동까지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재정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유네스코의 총 예산은 세계적인 대학 한 곳의 예산보다도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보고서는 이 부분에서 회원국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면서 ‘재정 지원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어요. 물론 지금도 회원국들은 정규 분담금 외에도 적지 않은 규모의 자발적 기여금을 유네스코에 제공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기여금에 지나치게 세세한 ‘조건’이 달려있기 때문에 유네스코가 큰 전략에 맞춰 프로젝트들을 구성하고 조정하는 데 애를 먹는 부분도 있다는 지적이에요. 그러한 조건에만 맞추려다 보니 프로젝트들이 더 잘게 쪼개지고, 필요한 인력의 고용과 적절한 배치에도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뜻이죠. 때로는 수많은 소소한(?) 프로젝트보다 ‘잘 키운 프로젝트 하나’가 더 요긴할 때도 있는 법. 그래서 보고서는 회원국들이 더 넓은 시야와 인내심을 갖고 유네스코가 장기적인 계획과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내는 데 함께해 주기를 당부했어요.

알쓸U잡 더보기ㅣ외부 평가의 더 깊은 의미는
오는 11월에 유네스코는 오드레 아줄레 사무총장의 뒤를 이를 사무총장을 선출할 예정입니다. 따라서 이번 MOPAN 보고서의 내용은 유네스코의 다음 리더십이 조직을 이끌어 나갈 방향을 검토하는 데도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이번 보고서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지목된 것들은 다음 번 평가의 기준점으로서도 의미가 있을 텐데요. 한 번의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얼마나 더 나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조직 구성원들에게나 조직을 지원하는 회원국 모두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과 같이 유네스코 최상위권 수준(2022-2023년 기준 정규분담금 8위, 자발적 기여금 4위)의 자금을 제공하고 있는 국가들은 이러한 투자의 ‘가성비’를 파악하고 향후 전략을 수립하는 데도 이번 평가가 소중한 자료가 될 겁니다. 우리나라는 매년 4백억 원 가까운 자금을 유네스코에 투입하고 있는데요. 유네스코라는 기구는 정말 적지 않은 국가 재원을 투입해도 아깝지 않게 잘 운영되고 있을까요? 그러한 자금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해 그 이상의 가치로 충분히 치환되고 있을까요? 인간의 기본권으로서의 교육을 모두에게 제공하는 일, 새로운 기술이 인권을 지키면서 모두에게 이롭게 쓰이도록 하는 일, 그리고 모든 국가들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미래를 위한 논의에 참여하는 일이 ‘비효율’이나 ‘제자리걸음’으로 보일 때도 적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냉혹한 ‘숫자’만으로는 그러한 가치가 충분히 드러나지 못할 경우도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평가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높이 평가받은 부분에 대해 믿음과 자신감을 갖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유네스코는 앞으로도 ‘미래변화 대처’의 적임자로서 우리 모두의 미래를 향한 여정에 꼭 필요한 조직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거예요.
<유네스코 뉴스레터> 편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