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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호] 커버스토리 / 테러와 폭력, 그 위기의 시대에 스스로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
작성일 2017.10.27
담당부서 커뮤니케이션팀 분류 기획

[737] 커버스토리

테러와 폭력, 그 위기의 시대에 스스로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

 

 

관용에 목마른 시대, ‘영웅이 필요한 까닭

혹시 2년여 전에 일어난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기억하는지. 프랑스 파리에 있는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 침입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무함마드(이슬람교 창시자)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벌인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 테러 행위에 대한 전 세계적인 비난 여론이 빗발치는 가운데 프랑스 서점가에선기이한현상이 벌어졌다. 1763년에 출간된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의 <관용론> 252년 만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 프랑스 국민들이 극단주의에 맞서기 위해관용이라는 방패를 꺼내들었던 셈이다. 대체관용이 무엇이기에 이런 반향을 이끌어냈던 것일까.

 

 

볼테르가 뿌린 관용의 씨앗

웹스터 사전(Webster's Dictionary)에 따르면 서구사회에서 관용’(Tolerance)이란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4세기 무렵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실제로 관용이 보편적 가치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볼테르(본명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Francois-Marie Arouet)에 의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저서 <관용론> 18세기 유럽을 휩쓸던 종교전쟁의 광풍에 휘말려 처형당한 한 가장의 억울함을 호소하며관용의 의미를 역설한 책이다. 종교적 맹신과 야만적 형벌제도에 맞서 그가 내세운관용’, 즉 불어로똘레랑스’(tolérance)종교를 포함해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양식을 존중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 우리가 흔히 쓰는 사전적 의미의 관용, ‘너그럽게 용서함과는 개념의 차이가 크다. 

 

볼테르는 <관용론>의 마지막 장에서이 책을 통해 후일 열매를 맺게 될 씨앗을 하나 뿌렸다고 적었다. 관용이 세상의 비이성과 광신의 바이러스를 잠재울 백신이 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로부터 25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 관용의 나무는 아직 열매를 채 맺지 못하고 있다. 관용의 나무가 자라나야 할 대지에서 여전히 전쟁과 학살, 테러와 폭력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의견이 같지 않다는 이유로 형제나 다른 사람을 박해하는 사람은 괴물이다라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여전히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괴물이 횡행하고 있는 셈이다.

 

유네스코가 말하는 관용

지난 1995, 창설 50주년을 맞이한 유엔과 유네스코가 이 기념비적인 해를 기리기 위해 선택한 키워드도관용이었다. 유엔은 유네스코의 제안에 따라 이 해를세계 관용의 해로 선포했고, 유네스코는 제28차 총회에서관용의 원칙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f Principles on Tolerance)을 채택했다. 또한 이 선언이 채택된 날인 11 16일을세계 관용의 날로 선포해, 회원국 모두가 매년 관용의 의미를 되새기고 관용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도록 했다. 관용이야말로 인류가 겪고 있는 갈등과 반목을 줄이고, 전쟁의 문화를 평화의 문화로 이끌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덕목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엔과 유네스코가 말하는관용이란 과연 어떤 개념일까. ‘관용의 원칙에 관한 선언1조는 관용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관용이란 우리 세계의 문화와 우리의 표현 형태, 인간의 존재 방식 등의 풍부한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며, 수용이며, 이해다. ...관용은 양보나 겸손이나 은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다른 이의 보편적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인정하는 적극적인 태도다.’

 

흔히 관용을 무관심과 묵인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관용의 원칙에 관한 선언에는 이를 경계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관용의 실천은 사회의 불의를 용인한다든지 자기의 확신을 포기 또는 약화시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자유로이 자기 자신의 확신을 고수하고 다른 사람이 그들의 확신을 고수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1 4)는 것이다. 나중에 인용 오류로 밝혀지긴 했지만, 과거 볼테르가 했던 것으로 알려졌던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권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겠다는 말은 관용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는 명언이기도 하다.

 

 

관용과 불관용이 맞서온 인류 역사

관용의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 개념 격인불관용의 사례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불관용은 한 집단이나 그 집단의 신념체계, 혹은 생활방식이 다른 집단의 것들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태도에서부터 생겨난다. 인종차별, 외국인(특히 난민이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 극단적인 형태의 민족주의, 광적인 신앙, 그리고 사회적 차별과 배척(소외), 전체주의, 폭력 등은 불관용의 대표적인 형태다. 11세기 말 십자군 전쟁에서 벌어진 이교도 학살이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적 불관용의 사례라면,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은 극단적인 형태의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낳은 불관용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에 의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 역시 광적인 신앙, 종교적 불관용이 빚어낸 참담한 범죄행위다.

 

하지만 불관용이 사회적·집단적인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개개인이 소수집단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갖고 있는 심한 편견, 고정관념도 개별적인 불관용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역사학자 헨드릭 빌렘 반 룬(Hendrik Willem Van Loon)은 자신의 저서 <관용>에서인류의 역사는 관용과 불관용이 맞서온 길이라며관용이 시대정신을 이끌었을 때 인류는 진보했다고 설파했다. 반면 불관용의 시대가 남긴 것은 광신과 독선이 낳은 전쟁과 학살의 비극적인 역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관용과 불관용의 시대 중 과연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걸까.

 

최근 발표된 유엔의 <아동과 무력 분쟁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Children and Armed Conflict)에 따르면 지난해 1 5500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아프가니스탄, 콩고, 이라크, 소말리아, 남수단, 시리아 및 예멘 등 20개국에서 벌어진 무력 분쟁으로 인해 죽거나 불구가 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취약한 대상인 어린이에 대한 이러한 심각하고 광범위한 폭력은 지금 이 시대가 결코 관용적이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지구촌 인권 소식의 본산 격인 유엔 뉴스센터에는 10월에만 10여 건에 이르는 불관용과 관련된 소식이 줄줄이 올라왔다. 아프가니스탄 카블에서 일어난 자살폭탄 테러,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차량폭탄 테러, 미얀마와 로힝 자족 반군의 유혈충돌로 인한 난민 사태, 아제르바이잔·이집트·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성적 소수자에 대한 체포 및 탄압, 예멘 주민의 이주자에 대한 갈등 등이 그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세상이 온통 불관용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여겨질 법도 하다. 

 

얼굴 없는 관용의 영웅들

하지만 낙망만 하기에는 아직 이른 듯하다. 우리 곁에는 불관용에 맞서는, 얼굴 없는 수많은관용의 영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관광도시이자 명문 축구클럽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이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선 지난 8 17일 끔찍한 차량 돌진 테러가 일어났다. 무슬림 극단주의 세력의 일원으로 알려진 테러범들이 차량을 몰고 인도로 마구 돌진해 13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던 것. 이를 계기로 극우 인사들과 극우 단체들은테러의 원인이 무슬림이라고 주장하며반 이슬람시위를 준비했다. 하지만 이들의 시위는 다수의 시민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지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시민들은테러를 이슬람의 탓으로 몰지 말라며 오히려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파시즘을 규탄했다. 이러한 시민들의 움직임은 테러에 반대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규모 평화 시위로 이어졌다. 수많은 익명의 시민들이 관용의 정신으로 불관용에 맞섰던 셈이다.

 

지난 10월 중순 국내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건설 중단 및 재개에 대한 공론조사에서 대다수 시민참여단이 보여준 태도도 관용의 생생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시민참여단은 종합토론회 과정에서 첨예하게 엇갈린 견해를 내놓았지만, 토론회를 마친 이후에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성숙한 민주시민의 모습을 보였다. 참여단에 참가한 시민들은  <연합뉴스>, <뉴시스> 등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내 생각과 반대되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장을 밝혔다.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이러한 관용의 태도야말로 민주주의를 지켜 내는 보루라 할 것이다. 

 

관용박물관 입구가 2개인 이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관용박물관(Museum of Tolerance)의 관용관(Tolerancenter) 입구에는 2개의 문이 나란히 놓여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편견이 있다(prejudiced)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문, 다른 하나는 자신은 편견이 없다(unprejudiced)고 여기는 사람을 위한 문이다. 그런데 편견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을 위한 문에는, 생각해보시고 다른 문을 여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 이유는 이 문 안에는 꽉 막힌 벽만 있을 뿐, 더 이상 통로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만은 편견이 없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편견이라는 점을 깨닫는 데서 관용관 체험이 시작된다.

 

끊이지 않는 전쟁과 테러, 부지불식간에 깊이 뿌리 내린 차별과 편견의 문화에 맞서려면 이 세상에는 더 많은관용의 영웅이 필요하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평화를 사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지키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대열에 나란히 설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불관용적 태도를 바꾸려 애쓰고, 다른 이의 인권을 침해하는 불관용에 맞서려 노력한다면 그런 사람이 바로 이 시대에 필요한 관용의 영웅이 아닐까.

 

송영철 유네스코뉴스 편집국장

 

*참고자료

<관용론> (볼테르, 한길사)

Declaration of Principles on Tolerance’ (UNESCO)

<Defining Tolerance> (UNESCO)

<Report on children and armed conflict> (UN)

museumoftolerance.com

<연합뉴스> 2017. 10. 15, ‘신고리 시민참여단...’ 기사

KBS <9시 뉴스>  2017. 8. 19, ‘바르셀로나 테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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