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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좋아하는 일이라면, 과학이라도 괜찮아
등록일 2020-03-31

이공계 진학을 고민하는 여학생들에게

좋아하는 일이라면, 과학이라도 괜찮아


 

 

 


지난 2월 11일 유네스코는 ‘제22회 로레알-유네스코 세계여성과학자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특히 본상 수상자들과 함께 전도유망한 신진 여성과학자에게 수여하는 ‘인터내셔널 라이징 탤런트’ 부문에서 한국의 신미경 교수가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더 많은 한국 여성 과학도들의 활약을 기원하며, 신 교수가 이공계 진학을 고민하는 여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해왔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배움은 본인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자아 실현의 의미도 있지만, 미래의 직업과 경제활동의 바탕이 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5년 전쯤 진로 결정을 고민하던 내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그림 그리는 것과 인테리어 소품이나 장신구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예체능 계열 진학을 희망했지만, 결국 진학의 기로를 결정한 것은 수학과 과학 과목의 점수였다. 나는 수학이나 과학에 엄청난 흥미를 느끼지는 않았지만 상위권 학생이었고,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신 수학 선생님의 권유로 자연스럽게 이공계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후 오로지 수능 시험 점수에 모든 노력을 쏟게 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내겐 대학 전공 선택을 고민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학생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을 지원하고 그 안에서 전공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는 경쟁 사회에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대학 입시 원서를 제출하는 시점에서야 비로소 전공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당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람’과 직접 관련된 분야, 그리고 앞으로 절대 없어지지 않을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었다. 나는 질병을 치료하거나 진단하는 의료기술이 그러한 분야라 생각해 의공학 전공을 선택했다. 의공학이라는 학문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학문들의 융합이었다. 너무 다양한 학문을 접하다 보니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생각보다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연구에 대한 흥미는 조금 늦게 찾아왔다. 처음에는 주어진 일을 해결하느라 바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연구 주제를 정하고 실험을 하고, 내가 생각한 내용들을 연구를 통해 증명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에 재미가 붙었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논문이나 경험으로 축적되는 등, 노력하는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좋았다. 동시에 연구 활동은 글로벌 무대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내가 고민하는 것은 세계 어딘가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고민이기도 했고, 이들과 만나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는 것도 좋았다.

지금도 연구의 길을 걷고 있지만, 동시에 내 예전 모습을 돌이켜 보게 만드는 어린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어 감회가 새롭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항상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고민을 하되, 선택한 길에 대해서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후회를 하기보다는 일단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고,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한 믿음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고,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 공학도로서 살아가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 나조차도 사회에서 여성 앞에 놓인 ‘벽’에 언제나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집안일과 육아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할당된 숙제이지만 여전히 ‘여성의 역할’로 인식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변화는 분명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신문에서 ‘여학생들은 수학, 과학 과목 성적이 결코 남학생보다 뒤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공계 진학 비율은 여전히 현저하게 낮다’는 기사를 보았다. 기사는 그 이유로 사회 문화적 인식을 들었다. 이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런 직업은 가지면 안된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에 매진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내가 잘하면서 좋아하기도 하는 그런 일이라면 과학기술분야도 얼마든지 좋지 않을까.

아직 갈 길이 멀고 경험도 많이 부족하지만, 운 좋게도 국제무대에서 과학상을 수상한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덕분에 내 경험과 연구자로서의 시작을 후배 여성 공학도들과 공유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도 기쁘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인생은 자기 신념에 맞게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그 길 위에 ‘이공계는 여성에게 힘들다’ 라는 인식이 만연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분야에서는 노력한 만큼 보람을 얻을 수 있고, 나아가 인류의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원대한 가치’도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 좋은 멘토들이 많다는 사실도 인지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늘 훌륭한 멘토이자 스승이신 카이스트 이해신 교수님과 펜실베니아대 제이슨 버딕(Jason A. Burdick)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신미경

성균관대학교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신미경 교수는 성균관대학교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조직 재생 및 치료를 위한 접착성 생체재료를 디자인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특히 홍합모사 접착성 지혈 고분자를 이용한 코팅 기술로 세계 최초의 ‘무출혈 주사바늘’을 개발해 유전적 질병인 혈우병 모델에서 효과적인 지혈 효과를 보여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