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유네스코뉴스

유네스코 뉴스 입니다.
커버스토리 | 문화유산, 모두의 보물에서 모두의 미래로
등록일 2022-10-07

문화유산, 모두의 보물에서 

모두의 미래로 

 

9월 28일부터 30일까지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서는 문화유산의 보호에서부터 디지털 시대의 문화예술산업 증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걸쳐 각국의 문화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2022년 세계문화정책회의(MONDIACULT 2022)가 열렸다. 11월호에서 회의 현장 및 결과 소식을 전하기에 앞서, 유네스코의 문화 정책 관련 뉴스레터인 『더 트래커』(The Tracker)의 특집기사를 바탕으로 전 세계 문화유산정책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 온 유네스코의 문화유산 관련 협약들이 지난 70여 년간 어떻게 변해 왔으며,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2014년부터 약 3년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ISIL)의 점령하에

수많은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파괴된 이라크의 역사도시 모술(Mosul)의 알 노우리(Al Nouri) 모스크의 재건 현장.

유네스코는 2018년부터 ‘모술의 정신 재건’(Reviving the Spirit of Mosul)사업을 진행하며

이곳에서 유산 복원과 교육 및 지역 재건사업을 펼치고 있다. 

© UNESCO

 

파괴와 유실로부터 문화유산을 보호하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문화에 하나의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성이야말로 문화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라는 사실에 동의와 지지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러한 생각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된 일이 아니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전체에 걸쳐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할 힘을 갖게 된 서양 열강은 제국주의를 통해 ‘우월한 문화의 열등한 문화에 대한 지배와 교화’라는 욕망을 전 세계에 투사했다. 우월하다고 믿는 문화를 위해 그렇지 못한 문화의 산물들은 오랫동안 억압받고 파괴됐으며, 그러한 문화의 소유자들 역시 열등하거나 교화돼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러한 생각은 21세기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지구 곳곳에서 크고 작은 형태의 문화 충돌과 인류사적 비극을 낳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무엇보다 ‘평화’를 맨 앞에 내세우며 활동을 시작한 유네스코가 전쟁이나 분쟁 지역에서 문화유산을 보호할 대책 마련을 서두른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었다. 가공할 만한 현대 무기의 파괴력 앞에서 그 어떤 문화유산도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체감한 전문가들은 문화유산이 뺏고 뺏기는 보물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가치’가 담긴 그릇임을 전 인류가 인식하길 원했고, 문화유산의 보호가 각국의 책임인 동시에 인류의 보편적 책임이기도 하다는 의식을 뿌리내리고자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1954년에 유네스코가 채택한 「무력충돌시 문화재 보호를 위한 협약」(헤이그 협약)은 문화, 특히 문화유산이 인류 전체의 안녕과 의식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에 대한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무력충돌 발생 시 문화유적 같은 부동산뿐 아니라 책이나 수집물 등의 동산까지 아우르는 문화유산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기준을 담고 있는 이 협약은 1999년에 채택된 제2의정서에 이르러 협약 위반자나 단체에 대한 보편적 관할권과 처벌까지 명확히 규정하면서 보호 책임의 개념을 넓혀 왔다. 이를 바탕으로 2004년에 열린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는 유고 내전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두브로브니크의 구도심에 수백 발의 박격포 난사를 지시한 해군 장성 미오드라그 요키치(Miodrag Jokić)를 처벌했으며, 2016년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말리 팀북투의 종교 유적을 고의로 파괴한 지하드의 책임자 아흐마드 알파키 알마흐디(Ahmad Al Faqi Al Mahdi)를 전쟁범죄자로 규정하며 그 책임을 물었다. 이렇게 문화유산 보호에 관한 명분, 그리고 위반자에 대한 처벌 사례가 쌓여가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은 문화유산 보호의 보편성과 책임감을 인식하게 됐다. 유네스코 역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 현재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문화유산 파괴 행위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문화유산 파괴가 전쟁 등의 무력충돌시에 주로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인간의 탐욕에 뿌리를 두고 있는 문화유산의 불법 유출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문화유산 파괴 행위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은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혹은 ‘왕실과 국가의 영광’을 명분으로 기회가 생길 때마다 옛 무덤을 파헤치고 서고와 사원을 약탈하며 값진 문화유산을 빼돌려 왔다. 유네스코가 1970년에 채택한 「문화재의 불법적인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1970년 협약)은 이처럼 약탈 또는 불법 반출된 문화재의 유통을 금지하는 동시에, 적절한 방식으로 이를 반환하는 것까지 규정한 역사상 최초의 국제적인 약속이다. 비록 협약 채택 이전에 일어난 일들에까지 그 적용이 소급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지만, 협약과는 별개로 유네스코는 1978년 문화재반환촉진 정부간위원회(ICPRCP)를 설립함으로써 국가 간 대화와 협의 및 적절한 중재를 통해 문화재 반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1970년 협약으로부터 2년 뒤인 1972년에 채택된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 즉 세계유산협약은 문화유산에 대한 보호의 책임을 보편적 인류 개개인의 차원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 그간 유네스코의 노력이 마침내 만들어 낸 결실이다. 전쟁터에서든 재난 상황에서든 우리가 타인의 인권과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보편적이고도 당연한 가치이듯, 유네스코는 이 협약에서 제시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통해 문화유산을 미래 세대에 무사히 전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당연한 책임임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이 협약은 국경선에 걸친 문화유산을 갖고 있는 당사국들이 분쟁 대신 협력을 강구하는 토대가 됨으로써 외교적 측면에서 유용한 틀이 됐으며, 세계유산목록과 더불어 관리하는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은 유산의 파괴나 유실을 막고 손상된 유산을 복구하기 위한 전 세계의 관심과 행동을 촉구하는 응급체계로서 가치가 크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현재까지 전 세계 194개국이 이 협약을 비준함으로써 세계유산협약은 역대 가장 많은 국가가 비준한 국제 협약 중 하나로 손꼽힌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크로아티아의 역사도시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 전경. 

이곳은 1991년 내전 중 발생한 포격으로 상당수가 파괴되어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에 올랐다가 

유네스코를 포함한 국재사회의 재건 노력 끝에 1998년 해당 목록에서 해제됐다.
Pero Mihajlovic / Shutterstock.com

 

문화를 숨쉬게 만드는 다양성의 가치

 

1972년 세계유산협약이 채택된 이후 올해로 꼭 50년이 됐다. 문화유산의 보편적 가치와 보호 책임에 대한 공감대가 마련된 이후부터 지난 50년의 세월은,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유산의 ‘물리적 실체’를 넘어 해당 유산과 이를 둘러싼 지역의 사회적 기능 및 가치까지 포함하는 고유성(authenticity)과 다양성으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더 트래커』는 해당 기간을 유네스코 문화유산 관련 협약의 ‘두 번째 세대’로 규정하면서, 1982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첫 번째 세계문화정책회의(MONDIACULT 1982)를 변화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시점으로 꼽았다. 각국 문화 부서 장관들을 포함한 126개국 960여 명의 참가자들은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문화 간에는 어떠한 서열도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소위 우월한 문화와 열등한 문화 간의 그 어떤 차별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데 동의했다. 동시에 ‘문화’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는 일에도 합의했다. 이에 따르면 문화란 “예술이나 문자의 형식뿐 아니라 함께 사는 방법으로서의 생활 양식, 인간의 기본권, 가치, 전통과 신앙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며, 따라서 문화유산 역시 “유형의 유산뿐만 아니라 언어, 의식, 믿음, 역사적 장소와 기념물, 문학, 예술작품, 도서관과 수집물까지 포함하는 인류의 창의적인 표현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무형문화유산’의 개념 역시 본격적으로 다뤄졌으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홈페이지는 이 회의를 ‘무형문화유산’의 개념이 공식적으로 언급된 첫 번째 사례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이후 문화 다양성과 다원주의는 전 세계의 문화 관련 정책의 테두리 안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는 1989년 「전통문화 및 민속 보호에 관한 유네스코 권고」 채택과 1995년 ‘세계문화발전위원회 보고서’인 『우리의 창조적 다양성』(Our Creative Diversity)의 발간에 이어, 2000년대 초반에 연달아 나온 협약들에서 그 결실을 보게 된다. 변화의 결과는 2001년에 채택된 「수중 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의 첫 줄에서부터 고스란히 드러난다. 해당 부분은 수중유산을 “사람들과 국가의 역사뿐만 아니라, 서로 간의 공통된 유산을 고려하면서 맺어가는 관계에서 특히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하면서 문화유산의 의미가 ‘보이지 않는 것’까지 두루 포괄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한 수중유산과 위험에 처한 수중유산을 이해하고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기후변화 및 해수면 상승과 같은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명시함으로써, 문화유산이 지속가능발전을 달성하고자 하는 인류 앞에 놓인 중요한 도전과제들에 대응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음을 언급했다.

창의성과 다양성을 포함한 문화의 무형적 가치를 중심에 두는 유산 접근법은 2003년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협약」(무형유산협약)의 채택과 더불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고, 세계화의 거센 물결에 직면한 토착민 등 소수자 집단의 전통적인 지식을 보전해야 한다는 전 세계적 공감대를 반영한 이 협약은 문화유산이 조상으로부터 내려와 우리 후손에게까지 전해지는 삶의 방식과 전통까지 포함하는 것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또한 무형유산이 사회의 결속력을 높이고, 단일하거나 중첩된 집단에 소속된 개인이 그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과 책임감을 갖도록 해 주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정부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문화집단과 비정부기구들까지 폭넓게 이러한 무형유산을 파악하고 보호하는 데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무형유산과 문화의 세대 간 전수를 보장하기 위해 교육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앞선 1972년 세계유산협약이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의 비준을 받은 협약 중 하나라면, 무형유산협약은 채택 20년 만에 179개국이 비준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빠른 가입 추세를 보이는 국제 협약 중 하나로 꼽힌다. 이는 숨 가쁘게 진행되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무형유산 역시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그만큼 많은 나라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문화유산의 가치와 그 보호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확보하는 데서 출발해 문화적 다양성의 가치를 알리고 보전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내디뎌 온 유네스코의 문화 관련 협약들은 2005년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증진에 관한 협약」(문화다양성협약) 채택에 이르러 마지막 방점을 찍었다. 2년 전의 무형유산협약이 선대로부터 전해져 온 생활 양식과 그 행위의 보전 및 전수자(집단)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면, 문화다양성협약은 문화유산이 살아 움직이며 계속 진화해 나가도록 해 주는 무형의 가치, 즉 인간의 창의성이 발현된 모든 결과물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무형유산협약에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나 해당 무형유산을 전수하는 커뮤니티가 유산 보전의 중요한 주체였다면, 문화다양성협약에서는 개인의 창의성과 문화적 다양성으로부터 자라나는 표현의 다양성을 증진하는 주체로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을 포함한 관람객들이 르느와르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각국의 문화정책 관계자들은 문화유산의 보전과 문화적 다양성 제고를 넘어, 

소수 문화 및 다양한 계층에 대해 더욱 포용적이며 문화적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세대의 문화유산 정책

 

유네스코가 지난 8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문화유산 분야에서 차곡차곡 쌓아 온 여러 협약은 이제 전 세계에서 문화유산을 지키고, 전수자들과 그 커뮤니티를 보호·육성하고,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증진하는 정책들을 마련하는 데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이 모든 문화적 요소들을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게 향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문화유산은 전쟁 당사국이나 테러리스트들의 전략적 표적이 되고 있으며,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응이 ‘합의는 있으나 실천은 지지부진한’ 상황 속에서 지구촌 곳곳의 문화유산과 토착민 커뮤니티는 갈수록 더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분쟁 지역에서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블루실드(The Blue Shield)의 회장인 피터 G. 스톤 영국 뉴캐슬대 교수는 『더 트래커』 기고문에서 “근시일내에 지구상에서 무력 분쟁이 사라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임을 감안할 때, 정치·군사적 계획이나 이와 관련한 인도주의적 대응책 마련 단계에서부터 유산과 개인 및 지역사회에 대한 보호를 중재하는 방안이 포함되도록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앞으로는 분쟁 지역에서 문화유산에 위협이 되는 기존의 요소들 외에 ‘문화 관련 기구에 대한 사이버공격’과 ‘기후변화를 원인으로 한 분쟁이나 자연재해 및 인재’가 또다른 위협 요소로 떠오르리라 전망하기도 했다. 유네스코는 기후변화로부터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과 대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 문화유산, 특히 전 세계 토착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자산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그러한 측면에서 더욱 진전된 정책 마련과 시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지구상 7천여 개의 언어 속에는 오래전에 일어났던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에 대한 적응 및 회복과 관련한 지식이 오롯이 담겨 있으며, 그 중 절반가량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져가고 있는 토착민들의 소수 언어다. 

이번 2022년 세계문화정책회의를 준비하며 각 지역마다 열린 지역별 자문회의(Regional Consultations)에서 회원국들은 인류가 직면한 새로운 위기에 대응해 문화적 다양성과 다원주의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많은 회원국과 관계자들은 “다양성과 다원주의에 기반해 지식 체계와 문화적 행위,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은 가장 긴급한 윤리적 문제(ethical imperative)”라면서, 이제는 “문화 및 언어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토착민과 소수민족을 포함한 개인과 집단과 지역사회가 문화를 향유하게 해 줄, 일종의 인권으로서의 문화적 권리”를 보장한다는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유·무형의 유산 보호와 문화다양성 증진을 넘어, ‘세 번째 세대’의 문화유산 정책을 모두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더 트래커』 세계문화정책회의 특집 3호(2022년 6월) 원문 읽어보기(영문)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