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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호] 커버스토리 / 디지털 시대가 문화다양성협약에 던지는 질문 / 지키기 위해 새로 만들어야 할 것들
작성일 2017.07.27
담당부서 커뮤니케이션팀 분류 인문사회과학

[734] 커버스토리 / 디지털 시대가 문화다양성협약에 던지는 질문

 

지키기 위해 새로 만들어야 할 것들

 

 

 

“힘센 자와 약한 자, 부자와 가난뱅이, 군주와 노예 사이에서 자유는 곧 억압을, 규제는 곧 자유를 뜻한다. 19세기 프랑스 성직자 라코르데르(Lacordaire)의 이 말은 콘텐츠 창작과 유통과 소비가 더없이 자유로워진 디지털 시대에도 문화다양성협약이 갖는 중요성을 잘 설명해 준다.

 

 

 

 

디지털 콘텐츠가 선사한 아날로그 경험

지난 6월 말 개봉된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는 한국 영화팬들에게 여러모로 진기한 경험을 선사했다. 미국의 디지털 스트리밍 미디어 제작사 넷플릭스(Netflix)가 투자한 이 영화를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가 아니라 극장에서 보고자 하는 팬은 우선 영화를 상영하는 몇 안 되는 극장 목록부터 확인해야 했다. 서울에서는 기존 멀티플렉스가 아니라도 독립영화전용관 등 훌륭한 시설을 갖춘 독립 극장이 많지만 지방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은 그간 ‘구닥다리’ 취급을 받았던 소규모 동네 극장뿐이다. 팬들은 그 흔한 스마트폰 앱도 지원하지 않는 극장에서 티켓을 현장 구매하고, A4용지에 프린트된 안내판’을 따라가 내 좌석을 찾은 뒤에야 비로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은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린 이후 대다수의 젊은 영화팬들에게 무척이나 생소했다. 몇 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최신 디지털 미디어 제작사의 영화를, 마치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 오래된 극장에서 봐야 하는 역설. 그것은 영화의 만듦새와 별개로 시대의 변화상을 직접 체험케 해 준 흔치 않은 기회였다.

 

잘 알려진 대로 <옥자>를 주요 멀티플렉스에서 볼 수 없는 이유는 국내 멀티플렉스 업계가 영화 산업 생태계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 영화의 상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제작사 넷플릭스는 자사의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자와 영화팬들이 동시에 영화를 볼 수 있길 원한 반면, 멀티플렉스들은 스트리밍이 시작되기 전 최소 몇 주간의 극장 독점 상영 원칙을 고수하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편으로 많은 영화팬들은 수익을 위해 자사 스크린 대부분을 똑같은 영화로 도배하다시피 해 온 멀티플렉스가 갑자기 '영화계 선순환 구조'를 걱정하는 것 또한 너무나 뜬금없는 일이라며 SNS를 통해 조롱 섞인 말을 남기기도 했다.

 

 

새 시대의 콘텐츠, 영화 본질 논란에 불을 지피다

국내 멀티플렉스 업계가 비판 속에서도 끝까지 <옥자> 개봉을 거부한 데는 지난 5월 말 프랑스에서 먼저 있었던 논란도 영향을 미쳤다. 이 영화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자 프랑스극장협회가 “프랑스 내 극장 개봉을 하지 않은 작품이 칸영화제에 진출한 것은 위법”이라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국내법은 극장 개봉작은 개봉일로부터 36개월이 지난 뒤에만 인터넷으로 공개하도록 돼 있어 넷플릭스 같은 인터넷 스트리밍 업체로서는 프랑스 내 극장 개봉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논란이 일자 조직위원회는 차기 영화제부터는 프랑스 내 극장 개봉을 하는 영화만 경쟁부문에 초청하도록 규정을 바꾼다고 발표했다. 상황은 일단 그렇게 정리됐지만 인터넷 미디어 <복스>(Vox)는 “영화라는 문화의 본질을 두고 맞붙은 두 거인의 체스판에서 이제 첫 번째 말이 움직였을 뿐”이라며 디지털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가 영화라는 문화의 본질을 둘러싼 논쟁에 불을 지폈다고 평했다. 커다란 스크린과 몰입된 환경에서 갖는 ‘공유된 경험’(shared experience)을 영화의 핵심 가치로 여기는 프랑스와, 스트리밍 서비스 같은 새 콘텐츠 소비 시장을 앞장서 개척하며 ‘원하는 콘텐츠를 편하고 자유롭게 소비할 권리’를 강조하는 미국 사이에서 앞으로도 논쟁이 계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문화는 상품이 아닌 가치라는 약속

이처럼 하나의 콘텐츠를 두고 그것의 ‘본질’을 규정하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한편으로 문화만의 고유한 특성이다. 어느 한 쪽의 경험과 시선으로 규정할 수도, 똑같은 환경에서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도 없는 문화를 ‘다양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시장에서 교환되는 ‘상품’으로서의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일단 구입하고 나면 그것을 어떻게 하든 소유자 마음대로인 공산품과 달리, 문화 콘텐츠는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에 대해서도 창작자가 ‘제대로 된 소비 또는 감상 형태'에 대해 이런저런 요구를 할 수 있으며, 그 처분이나 유통의 방식도 법으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특히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보호 의지가 남다른 프랑스는 일찍부터 ‘문화적 예외’(cultural exception)라는 표현으로 문화의 특수성을 강조해 왔다. 문화적 예외란 자유무역협정 같은 상품과 서비스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협정 속에서도 문화 상품과 서비스만은 예외로 둘 수 있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후 문화적 예외는 보다 부드러운 표현인 ‘문화 다양성’(cultural diversity)으로 점차 대체되었고, 강력한 자국 문화 산업을 바탕으로 20세기 문화 패권국으로 등극한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들의 지지를 얻었다. 200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148 2의 압도적 지지를 얻으며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촉진을 위한 협약’(이하 문화다양성협약)이 채택된 배경이다. 이 협약에 반대표를 던진 유이한 두 국가는 다름 아닌 해당 협약에 가장 큰 우려를 표한 미국 영화업계와 할리우드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계 자본으로 연결된 미국과 이스라엘이었다.

 

 

 

 

 

 

 

문화다양성협약은 디지털 시대에도 유효한가

전 세계적 지지를 얻으며 유네스코 총회에서 가결된 문화다양성협약은 현재까지 유럽연합 및 144개국에서 비준을 마쳐,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각국의 ‘문화주권’을 명시한 가장 중요한 협약으로 인정받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번 ‘옥자 논란’에서 정반대의 입장을 갖고 있는 주체들이 모두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 중 하나로 문화다양성을 꼽는다는 점이다. 프랑스 극장업계는 “스트리밍 업체가 영화를 스마트폰이나 거실에서 보게 만드는 것은 ‘커뮤니티가 똑같은 환경에서 함께 경험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고유의 문화적 특징을 부정하는 것”이라 말한다. 반면에 <옥자>와 함께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제작돼 칸영화제에서 선보인 영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즈>(Meyerowitz Stories)에 출연한 배우 벤 스틸러는 “그들(할리우드 거대 스튜디오들)은 더 이상 돈 안 되는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며 “이 영화와 같은 중소 규모 예산의 아기자기한 코미디 영화에 기꺼이 투자한 제작사는 넷플릭스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칸영화제에 참석한 유명 배우 윌 스미스 역시 “(스트리밍 서비스가) 우리 집 반경 8000마일 안에 있는 스크린에서 찾을 수도 없는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다.

 

이 모든 논쟁 과정에서 볼 수 있듯, 눈부시게 발전하는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은 문화의 창작 방식도, 주체도, 배포 및 소비 형태도 쉼 없이 바꾸며 이제 열 두 살이 된 문화다양성협약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2005년 채택된 이 협약이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공교롭게도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협약문에는 ‘디지털’이란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문화다양성협약에 ‘딴지’를 거는 이들은 이를 두고 협약의 효용성에 대해 성급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문화다양성을 위한 유럽연합’(Coali­tions européennes pour la Diver­sité Cul­turelle)의 파스칼 로가르드 부회장은 “문화다양성협약에 디지털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는 것은 해당 협약이 디지털 시대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협약문을 작성한 전문가들이 협약문에 향후 기술의 진보로 인한 상황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 말했다. 또한 “디지털화로 인해 특정 국가나 문화가 전 세계 문화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창의성과 다양성을 지키려는 기존 정책을 우회하는 방법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문화다양성협약 2.0이 필요한 것”이라 덧붙였다. 영향력도 자본도 각기 다른 문화의 다양성과 가치를 디지털 시대에도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끊임없이 등장하는 문화 산업 ‘새얼굴’들 간의 정당한 경쟁과 자유로운 표현을 가능케 하기 위해, 시대에 맞는 ‘룰’을 다시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김보람 유네스코뉴스 편집위원

 

 

 

참고자료

teseopress.com Is Cultural Diversity Adapted to the Digital Era?

vox.com Cannes 2017: two vastly different cinema cultures provoke one big Netflix controversy

unesco.org Cultural prospectives: challenges of the digital era & a stronger civi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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