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위]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식사 초대 2015-01-12 (조회수 7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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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밖에서 “미니”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창문을 열어보니 옆집 꼬마친구들인 재퀴린(13), 플로라(13), 데보라(10)입니다. 아직 마을에 들어온 지 일주일도 안돼서 그런지, 옆집 아이들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많습니다. 내가 집에 있으면 항상 창문을 두드리고, 이름을 부르고, 안부를 묻고 같이 놀자고 부릅니다. 근데 왜 ‘미니’냐고요? ‘신혜’라는 이름이 외국인에게는 발음하기 어려워서 말라위에서는 성인 민(Min)을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우리 동네 아이들은 ‘민’을 ‘미니’라고 부르고 있는 겁니다.
이 날도 여느 때같이 안부를 묻는 줄 알았더니, 대뜸 ‘시마’를 먹을 줄 아느냐고 묻습니다. ‘시마’는 옥수수 가루로 만든 말라위의 주식입니다. 얼마 전에 먹어본 적이 있다고 했더니, 저녁 때 시마 먹을 생각이 있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저녁 초대인가 싶어서 감사한 마음에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20분쯤 지났을까. 데보라가 저녁 먹으러 가자며 창문을 두드립니다. 혼자 생활하며 식사가 부실했기 때문에 식탁위에 차려질 제대로 된 음식에 대한 기대감으로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그런데 데보라가 날 데리고 들어간 곳은 현관쪽이 아닌, 뒷마당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뒷마당에는 재퀴린과 플로라가 시마를 떠서 나눠주고 있고, 본페이스(13)와 에본(9), 로드웨이(3)가 뒷마당 바닥에 앉아 있습니다. 눈치껏 바닥에 앉으려고 하는데, 본페이스가 마당 가운데 쪽을 가리킵니다. 뒷마당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식탁의자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자신들은 바닥에 앉으면서 나를 위해서 집 안에서 꺼내온 것입니다. 참으로 미안하면서도 고마웠습니다.
절구통을 뒤집어서 간이 테이블을 만들고, 그 위에 시마와 채소볶음을 담은 그릇을 올려줍니다. 손 씻을 물도 따로 준비 해주고, 마실 물도 떠다줍니다. 뭔가 거창한 저녁 식사를 생각하고 온 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지금 어머니는 동생 간호 때문에 병원에 계셔서 집에 아버지밖에 안 계시고, 그래서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아이들이 삼시 세끼를 해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나를 위해서 식사 자리를 마련한 마음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나니, 아이들이 뭔가를 준비했다며 내 앞에 쪼르르 섭니다. 아이들이 평소에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에 내 이름인 ‘민’을 넣어서 개사를 한 다음에 춤을 추면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앙증맞은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아서 동영상을 못 찍은 게 안타까웠습니다. 시마 두 덩어리에 채소볶음뿐이었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저녁초대였습니다.
이제 나를 ‘아중구’ (Azungu:현지어로 ‘하얀 사람’이란 뜻. 한국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현지인들은 나를 아중구라고 부릅니다)가 아닌, 옆집에 사는 이웃사촌인 ‘미니'로 받아들여 준 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여기로 이사 온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고, 이들과 함께한 것이라고는 가끔씩 공놀이를 하고, 말은 못 알아듣지만 옆에 앉아서 같이 시간을 보낸 것 뿐인데,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요즘도 이 친구들은 가끔씩 저녁을 같이 먹자고 나를 부릅니다. 그럼 나는 나름대로 반찬을 만들어서 나눠 먹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식탁의자가 아니라 그들과 같이 뒷마당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습니다. 나도 너희와 같이 이 마을에 사는 사람이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세 살 로드웨이는 그 말뜻을 잘 몰라서 아직도 내가 가면 자기 몸의 3배 정도 되는 의자를 질질 끌고 나옵니다. 이들이 있어서 말라위에서 하루하루가 외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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