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위] 척박한 현실 속에서 얻은 삶의 깨달음 2015-04-01 (조회수 7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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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말라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미처 현지 사정을 파악하기도 전에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사업 아이디어 하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살짝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것은 바로 마을 거리에 공용 휴지통을 만들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이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뿐 아니라 각자의 집에도 휴지통이 없습니다. 처음 이곳에 와서 점점 쌓여가는 내 휴지나 비닐 따위를 보며“그래, 여긴 휴지통이 필요해”라고 생각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죠. 하지만 이 생각이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란 걸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이곳에서의 삶이란 말하자면 ‘버릴 것이 따로 없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모든 음식물 쓰레기는 집집마다 키우는 닭, 염소, 돼지, 혹은 개들의 먹이가 됩니다. 닦아낼 때 필요한 휴지는 어쩌냐고요?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휴지가 왜 필요해?”라고 되묻습니다. 물로 헹궈 내거나 (때가 타다 못해 갈색이 되다시피 한) 천으로 닦아내 다시 쓰면 그만이니까요. 한국에서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쓰레기를 버려 왔던 저에게 이것은 일종의 ‘충격’이었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이것은 그저 삶의 방식일 뿐이었습니다. 새하얀 휴지로 더러운 걸 닦고 버리는 것이야말로 이곳에선 어리석은 사치와 낭비인 것이죠.
사실 우리가 너무나 쉽게 소비하고 버리고 다시 새로 구입하는 모든 것들이 여기선 재활용되고, 또 다시 재활용 되며,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전에 잠시 한국에 귀국하던 때, 저는 머무르던 숙소를 정리하며 낡고 더러워진 양말과 밑창이 떨어진 신발을 그냥 방에 두고 왔었습니다. 몇 주 후 다시 마을로 돌아가 함께 살던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제가 버리고 갔던 양말은 열한 살 프린스가, 밑창이 떨어진 신발은 열두 살 안다스가 신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행여나 아이들이 민망해 할까봐 그걸 못 본 척하려 혼자서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그들의 민망함’이라기보다는 ‘내 자신의 부끄러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버린 것을 주워 쓰는 아이들이 아니라, 좀 더 현명하고 알뜰하게 내 물건을 사용하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었지요. 휴지통이 없어도 문제 없는 이곳에서의 삶, 버리는 행위에 대한 어떤 새로운 관점을 얻게 해준 경험이었습니다. 브릿지 활동가로서 행동한다는 건 이처럼 주민들의 관습과 삶의 방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없다면 마을 사람들과 같은 곳을 지향하는 사업을 펼칠 수 없을 겁니다.
아 참, 약간 빗나가는 이야기이긴 한데, 저의 그 휴지통 아이디어는 요즘 들어 오히려 필요한 사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회용 비닐이 널리 사용되면서 점점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버리는 게 없던 이곳의 삶 속으로, 이제 아무데나 버려선 안 되고 흙 속에서 썩지도 않는 ‘진짜 쓰레기’가 들어온 것입니다. 어쩌면 머지않아 저의 휴지통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고민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어쩔 수 없이 무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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