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들, 브릿지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다 2015-04-07 (조회수 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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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동안 유네스코한국위원회(한위)의 저개발국 교육 나눔 사업인 ‘유네스코 브릿지 아프리카 프로젝트’를 현장에서 이끌었던 활동가들이 지난 3월 귀국했다. 통산 세번째 기수에 해당하는 이들 활동가들은 한결같은 열정과 사명감으로 아프리카에 배움의 씨앗을 뿌리고 왔다. 3월 18일부터 이틀에 걸쳐 유네스코회관에서 열린 활동가 귀국보고회는 그들이 흘린 땀방울을 헛되이 버리지 않기 위한, 또한 브릿지 프로젝트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소중한 자리였다. 1박2일간의 보고회와 간담회 자리에서 마주한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 그들이 더 가까이 다가간 이유
세상 모든 사업에는 실수와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다. 그때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실수나 시행착오 그 자체가 아니라, 실수와 착오로부터 얻은 교훈을 어떻게 잘 반영하고 개선해 나가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브릿지 활동가 귀국보고회는 앞으로 한위가 브릿지 프로젝트를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 소중한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년여의 기간 동안 한위의 아프리카 브릿지 프로젝트는 ‘교육’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씨앗’을 아프리카에 뿌리 내리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헤쳐나가 야 했고, 그 맨 앞에는 열정 넘치는 활동가들이 있었다. 효과가 금방 눈에 보이는, 그래서 성과를 측정하고 홍보 하기도 쉬운 식량 같은 물품 지원 대신, 당장 시작하기도 힘들고 그 효과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교육 지원 활동을 펼쳐야 했던 브릿지 활동가 들. 과연 이들이 현장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고민은 어떤 것이었을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NGO 단체들조차 잘 찾지 않는 교육의 오지로 들어가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하며 주민들과 부대꼈던 나날 속에서 그들은 과연 어떤 의미를 찾았을까.
이가람 활동가(짐바브웨): 처음에 제 가 가장 관심 있었던 분야는 인권 쪽이 었어요. 아프리카의 수많은 난민들을 돕고 싶었죠. 하지만 지금은 브릿지 프로젝트를 하면서 접하게 된 교육개발사업에 공감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난민과 교육 분야를 접합시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려 할 정도로요. 브릿지 활동가들은 여타 단체들에 비해 훨씬 주민들 지속가능한 프로젝트, 홀로 설 수 있는 아프리카를 위해 가까이에서 활동을 한 게 사실입니다. 그 부분을 우리만의 ‘비교우 위’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현지 활동을 하며 지역 주민들에 대한 이해가 없는, 정말 기본적인 인식이 결여돼 있는 봉사자들도 봤어요. 우리 마을에서 봉사하는 여러 NGO나 단체 중 마을 내에 거주하며 그들과 부대끼며 일하고 살아가는 단체는 우리밖에 없었고, 그게 우리의 큰 강점이었어요.
김문주 활동가(레소토): 1기 때부터 활동가들, 브릿지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다 활동한 저는 마을 내에서 아주 가까이 생활한 경험도,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서 한 발 떨어져 활동가들을 관리한 경험도 있어요. 우리가 만약 아무런 지역적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사업을 펼쳐야 한다면 주민들에게 한 발이라도 더 다가가는 게 프로젝트 시행에 필수적이 고, 그런 점에서 주민들 바로 곁에서 생활한 우리들의 선택이 의미가 있다고 봐요. 물론 관리해야 할 마을이 더 많아지고 이들을 두루 관리해야 한다면, 제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활동가 한 명과 코디네이터 한 명으로 팀을 구성하는 방향이 좋을 것 같아요.
선연희 활동가(르완다): 활동 기간 동안 저는 현지 문해교실을 모두 백 번 넘 게 방문했습니다. 한 곳당 적어도 다 섯 번, 많게는 스무 번 정도 방문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알게 된 한 가지가 있어요. 제가 많이 자주 방문한 곳일수록 피드백이 월등하다는 것 이었어요. 꾸준하고 일상적인 관계를 통해서만이 그들로부터 진정으로 필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거죠. 르완다에 수많은 봉사단체 사람들이 수백명 이상 있지만 마을안 에서주민들과 함께하는 활동가 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에요. 그 때문에 우리의 현장 활동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활동가들의 딜레마 - 얼마나 다가가야 하는가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단체 구성 원들에게는 한결같은 딜레마가 있다고 한다.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 얼마만큼 현지인들과 가까워져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그런 실질적, 심리적 ‘거리’는 활동가들의 안전 문제 같은 기본적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또한,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가까이서 직접 챙겨주던 활동 가들이 떠나고 나면, 주민들에게서 사업 의 연속성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지 에 대한 효율의 문제와도 닿아 있다. 활동가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한위는 이 부 분에서 항상 힘든 선택을 내려야 했다.
김호경 활동가(남아공): 김문주 활동가처럼 저 역시 지난 기수 때는 지역 커뮤니티 내에서 주민들과 가깝게 활동했 지만 이번 남아공 활동 때는 지역 외곽에 머무르며 현장으로 출퇴근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가까이서 생활을 하며 지 역 주민들과 친밀도를 높이는 것은 틀림없이 많은 장점이 있어요. 그 지역에 대해 일단 알고 나야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으니까요. 반면에 이런 부분도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저는 소위 말하는 ‘을’의 입장에서 주민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에 행동 하나 하나에 주의를 기울였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저를 ‘갑’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들은 도움을 받는 사람, 저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란 인식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지역 커뮤니티 센터의 집행위원들을 통해 간접적인 활동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해요. 현지 주민들이 스스로 ‘오너십’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활동가가 한 걸음 물러나 활동하는 게 약이 될 때도 있으니까요. 따라서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서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민신혜 활동가(말라위): 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차라리 몰 랐으면 좋았을 걸”이라고요. 가장 가까 이에서 그곳의 진짜 어려운 현실을 다 알아버린 뒤부터는 늘 마음이 무거워짐 을 느껴요.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 심 지어 한 가족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숨김 없이 마음을 나누는 게 오히려 활동 가로서 짐이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무조건 열정적이고 무조건 마음을 다 쏟는다 해서 당장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요. 제가 올해 활동가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잠시 한 발 떨어져서, 스스로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나서 다시 돌 아갈 생각입니다. 개발협력이라는 무거운 과업을, ‘학문’으로서 좀 더 공부하 고 진정 무엇이 바람직한지 좀 더 냉철 한 마음으로 수행할 준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속가능한 프로젝트, 그리고 지속가능한 아프리카를 위해
한위를 포함해, 수많은 단체들이 아프리카를 돕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홀로 설 수 있 는 아프리카’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리고 브릿지 프로젝트는 바로 ‘교육’이 아프리카를 홀로 설 수 있도록 돕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거란 믿음에서 출발한 사업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아프리카가 홀로 설 수 있을 때까 지 프로젝트 역시 스스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어 내야 한다는 것. 문제는 일 년 이 년이 아닌, 십 년 이십 년 이상 을 바라봐야 하는 교육의 성과를 어떻 게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보완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모델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택한 한위와 활동가들이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이 문제에 대해 활동가들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지애 활동가(말라위): ‘지속가능성’ 의 문제는 언제나 무겁게 느껴지는, 장기적으로 풀어 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일 년 단위, 월 단위로 계획을 짜고 움직여야 하는 활동가에게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혼자 고민해서는 답이 나올 수 없었죠. 그래서 저는 일부러라도 주민들과 얘기를 더 많이 했어요. 틈날 때마다 물어봤죠. 내가 가고 다른 활동가가 오거나, 다른 단체가 왔을 때—한위와 현지협력단체가 함께 세운—지역학습센터(CLC) 운영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운영할 의지는 있는 것인지 궁금했거든요. 주민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예’였어 요. 그래서 항상, 주기적으로 지속가능성 문제에 대해 주민들이 생각하고 시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어요. 그 결과 우리는 센터옆에 조그만 미니숍을 오픈했어요. 외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말이죠. 거기서 주전부리 빵 등을 팔고, 수익금으로 센터 운영에 조금이나마 보탤 수 있도록 말이지요. 또한 센터 교사들과 위원들을 대상으로도 조금씩 정기적으로 모금했어요. 물론 그런 식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정말 어려워요. 외부 공여자가 해 주었던 부분을 전적으로 주민들이 하는 것은 아직 불가능해요. 하지만 ‘그러니 까 우린 할 수 없어’보다는,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 더 크다는 걸 발견했어요. 주민들이 그런 마음을 공유하면서 조금 이나마 가능성을 찾고 도전의식과 주인의식을 키워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선연희 활동가: 솔직히 말해, 예전에 제가 활동했던 곳에서 이루어 놓은 것들이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으리란 장담은 할 수 없어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언가를 일구어 낸다는 게 그만큼 힘들고, 그걸 유지해 나가는 건 더 힘든 일이에요. 그러니 저희 프로젝트와 아프리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라 면 일정 부분 기반이 갖춰지고 현재 (지 역학습센터가) 운영되고 있는 곳을 지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어 요. 다른 단체와 연계를 하는 것도 좋고요. 사실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여러 단체들 사이에 어떤 경쟁 심리가 없다고 하면 거짓일 거예요. 그래서 협력과 연계를 통한 활동이 쉽진 않겠지만, 이 부분 역시 브릿지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행한 것처럼 한위가 선구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문제 아닐까요? 또한 현지 리더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꾸준히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이들을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활동가들의 이야기 “어디까지든, 한번 함께 가보고 싶어요”
이가람 활동가 사실 현장 활동을 연장할 생각 없었는데… 동영상 하나를 보고 마지막에 생각이 확 바뀌었어요. 동영상에서 어떤 난민이 “내가 학생이 아니었다면 난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어요. 비로소 교육을 자기 인생에서 중 요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교육이 도대체 무엇일까, 나한테 교육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걸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됐어요. 그러면서 1년 더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작년에 제 공식 명칭은 ‘프로젝트 어시스턴트’였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가 전체 총괄을 다 해야만 했 어요. 그래서 올해에는 활동가로서 프로젝트 전반을 조직, 운영하는 역량을 더 갖추고 싶기도 해요. 한지애 활동가 처음 활동가로 파견된 게 2013년 8월 이었어요. 그 해에는 현지에 5개월만 머물렀기에 그 다음 기수 때 당연히 또 가야겠다 생각했었어요. 사실 작년 활동을 하면서는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 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 생각하지 못했던,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들이 조금씩 생기는 게 와 닿는 거예요. 주민들이 딱히 제게 ‘의지’를 해서라기보다 는, 제가 그 곳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고 그들의 ‘믿음’을 받고 있으니까요. 사실 하루하루 삶이 팍팍한 사람들인데 책 한 권이 손에 쥐어진다고 해서 그들이 갑자기 공부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것보다는, 그들과 접촉하고 대화하면서 왜 교육이 필요한지, 그들이 원하는 걸 배우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그들 스스로 알아가게 하는 과정이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때 비로소 진짜 교육이 시작되니까요. 활동가가 바뀌면 활동가도, 주민들도 다시 서로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 동안 이 사람들이 겨우 알아내고 배운 그런 것들을 보류하고 포기해야 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다시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함께 가보자, 한번 지켜보자는 마음으로요. 선연희 활동가 지난 11월에 현지에서 문해교실 관련 조사를 직접 했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공부를 하고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에 응해 주셨는데, 그걸 반영해 뭔가 해보기도 전에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 무엇보다 개발협력이란 게 짧은 기간으로 되는 게 아니라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이쪽에 관심이 있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재밌다면 계속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에 다시 신청했어요. 르완다 자체가 그저 좋다는 이유도 있어요. 그 곳 사람들을 정말 좋아하게 됐거든요. 하루 40리터로 제한된 물로 생활하고, 주민들과 함께 나눠먹는 생활들이 어느새 제 일상이 됐어요. 귀국한 지 2주 정도 됐는데 아직 한국 생활이 어색할 정도로요. 활동 과정이 스스로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어쩌면 이게 내가 추구하는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문주 활동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지만 처음 시작하는 기분이기도 해요. 올해 처음으로 시행되는 ‘전문요원’으로 지원했거든요.(인터뷰 이후 그녀는 전문요원으로 최종 선발됐다) 저는 2010년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레소토를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가장 덜 알려진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사업이 2+2 체계(2년 +2년)였는데, 결과적으로 지난해로 그걸 다 채웠어요. 그간 레소토라는 나라에 대한 애정도 많이 생겼지만, 브릿지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지금까지 활동해온 만큼 앞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는 욕구가 마음속에 계속 있었어요. 해가 거듭되면서 시행착오도 겪고 사업 방향에 수정이 생긴 부분도 있고… 아쉬운 부분도 많이 있었는데요, 이번에 좀 더 전문적인 타이틀과 임무를 갖고 다시 레소토를 찾는다면 앞서 4년 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도, 사업 자체로도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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