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교육은 '희망'의 연고입니다. 2015-08-21 (조회수 6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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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브릿지 현장인 아프리카 짐바브웨와 잠비아에서 얼마 전 몸과 마음의 치유를 기다리는 두 사람, 파자이와 타실라의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지역학습센터에서 삶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가는 그녀들에게, 브릿지 활동가와 전문요원들은 ‘교육’이라는 희망의 약을 더 많이 발라 줄 것입니다.
얼마 전 손등을 다쳐 약 상자에서 연고를 찾아 발랐습니다. 행여 흉터라도 남을까, 두 번 세 번 덧바르다가, 문득 저를 만날 때마다 자신의 작은 손바닥 을 펴 보이는 여섯 살 소녀 파자이가 떠 올랐습니다. 파자이가 우리 마부쿠 지역학습센터 (CLC)를 찾아온 것은 3주 전쯤의 일입니다. 여느 때처럼 벽도 없이 뻥 뚫린 센터 저 너머로 세 명의 소녀가 손을 잡고 다가오는 게 보였습니다. 열두 살, 아홉 살, 여섯 살의 이 자매들은 아침마다 이곳을 찾는 또래 친구들을 좇아 여기까지 온 모양입니다. 아이들은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곤 지역학습센터 선생님들에게 여기 오게 된 사정을 들려주었습니다. 남편을 여의고 세 자매와 막내아들, 그리고 시아버지 를 돌보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너무 어렸고, 할어버지는 힘이 없었습니다. 기특하게도 세 자매는 어두운 방에서 절망하는 대신, 파란색 브릿지 프로젝트 가방을 맨 친구들을 따라 여기까지 와 주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견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세 자매에게는 해가 뜨면 갈 곳이 생겼습니다. 그곳에서 비로소 막내 파자이는 그 작은 손안에 숨겨두었던 상처를 보아 줄 ‘어른들’을 만났습니다. 파자이가 펼쳐 보인 손바닥을 저는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손바닥 전체에 염증이 퍼져 있었습니다. 황급히 한국에서 챙겨온 구급상자를 뒤져 바늘, 소독약, 거즈, 연고, 밴드 등을 챙겨 하굣길에 들려 보냈습니다. 충치를 부여잡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소녀가 있고 밤새 고열에 시달린 두 살배기 손자를 어쩌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할머니가 있는 이곳에서, 그 아이만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파자이는 나를 발견하기만 하면 쪼르르 달려와 손바닥을 들이밉니다. 어느덧 상처가 다 아물었는 데도 말이지요. 나는 그저 웃음으로 답하거나 손을 잡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제게는 더 줄 연고도 남아 있질 않았으니까요.
오늘 상처에 연고를 바르면서, 그렇게 세 자매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자신을 돌볼 수 있길 희망했습니다. 스스로를 살펴 들여다보고, 생채기를 염려하고, 흉터가 남지 않게 몇번이고 연고를 덧바를 수 있길 바랍니다. 스스로를 애지중지하길 원합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 자신의 가치를 찾는 과정. 이것은 ‘교육’의 또 다른 이름으로 들립니다. 당장 세 자매에게 구급 상자를 주는 일만큼이나 잊어서는 안될 교육이라는 치료법. 책 속에서, 선생님의 가르침 안에서, 교육을 통해서 세 자매가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깨우칠 수 있도록 ‘브릿지 프로젝트’라는 처방을 조심스레 써 봅니다.
■ 브릿지 활동가 전혜린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 차로 3시 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네가네가 (Nega-Nega) 마을은 인구 1100여 명 이 살고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이곳에는 마자부카(Mazabuka)시를 대표하는 설탕 공장이 있어서 대부분의 주민들이 사탕수수나 과일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고, 전국 각지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기 위해 방문하는 기업인들도 많다고 합니다.
이곳에 사는 타실라(Tasila Zulu, 22 세)의 하루도 여느 주민들과 같이 아침부터 바쁘게 시작됩니다. 하지만 바나나 재배 농장에서 일하는 그녀가 남들보다 좀 더 바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네 살 된 아들과 생후 2개월밖에 안 된 딸아이가 있기 때문이지요.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된 타실라는 낮에는 바나나 농장에서 일을 하고, 오후 2~3시부터는 지역학습센터(CLC)에서 문해 교육을 받습니다. 엄마 품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둘째아이를 안고 와서 열심히 공책에 지역센터 강사가 써준 단어들을 써 보곤 합니다. 불편하고 힘든 자세로도 자신의 부족 언어인 통가어를 또박또박 써 내려가는 모습은, 그 동안 얼마나 그녀가 교육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타실라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에 부모를 여의었습니다. 이후 학업을 포기하고 농장에서 일을 하며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몸과 마음을 의지할 만한 누군가를 만나기도 했지만, 슬프게도 그 사람들은 타실라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곤 했습니다. 타실라와 아기들만 남긴 채 떠나버린 그들에 대한 원망이 아직 그녀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들이 그녀에게 생긴 다음부터 타실라는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유롭게 읽고 쓰고 자신 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어, 누군가에게 지식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꿈입니다.
그녀의 앞엔 여전히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바나나 농장에 매일 나가야 하는데, 그 동안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생후 두 달 된 아기를 잠깐 옆집 할머니에게 맡기고 일을 나갈 때 타실라의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워집니다. 그런 와중에도 일주일에 두세 번 있는 문해교육교실은 꼬박꼬박 참석하려 합니다. 바로 ‘언젠가는…’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장소가 바로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이라는 말은 타실라의 두 어린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붙잡고 가야 할 희망이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이 가난을 벗어나고, 언젠가는 이 ‘무지’의 고통을 자식들에게 넘겨주지 않을 날이 올 것이며, 언젠가는 나 또한 행복해지겠지…. 이 어린 엄마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품에 아기를 안고 한 손엔 공책이 든 가방을 들고 지역학습센터로 와 한 움큼의 ‘희망’을 배워 갑니다.
■ 브릿지 전문요원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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