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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뉴스

유네스코 뉴스 입니다.
현장스케치 / ‘2019 세계 토착어의 해’ 기념 거리행사
등록일 2019-06-03


‘소멸 위기 언어’로 전하는 언어 다양성의 가치


2019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토착어의 해’(International Year of Indigenous Languages)다. 유엔은 해마다 특정 주제나 이슈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인류의 공동 노력을 촉진하기 위해 세계 기념해를 지정한다. ‘토착어’(indigenous languages)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기념해로까지 지정하게 된 것일까? 

 

유네스코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의 수는 약 7천여 개며, 그중 3분의 1이 넘는 2680여 개의 언어가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2010년 유네스코가 펴낸 『소멸 위기에 처한 세계 언어 지도』(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에 따르면 1950년부터 2010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230개의 언어가 영구히 사라졌다. 같은 자료에서 유네스코가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한 언어 중 146개 언어는 해당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전 세계에 채 10명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고, 178개 언어도 사용자 수가 10-50명에 불과하다. 이들 대부분은 고령의 노인이며, 그 자손들은 다양한 이유로 해당 언어를 배우지 못했거나 앞으로도 배울 의사가 없다. 영향력이 큰 주류언어의 지배력은 증대되는 데 반해 소수 언어는 힘을 잃고 사라지고 있다. 

 

언어가 사라지는 게 뭐 대수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언어는 수천 년에 걸쳐 이어온 문화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고, 따라서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언어가 담고 있는 문화와 지혜, 전통과 같은 인류의 자산이 소멸한다는 것을 뜻한다. 북미 원주민 언어에는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한다. 공기와 물, 땅과 같이 인간에게 필수적인 자원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라는 고유한 문화적 믿음이 그들의 말에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어에는 그 문화를 향유하는 구성원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언어의 소멸은 수천 년간 축적한 인류의 지식과 경험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이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세계 토착어의 해를 맞아 지난 5월 9일 유네스코회관 앞에서 사라져 가는 토착어의 소중함을 알리고, 토착어의 아름다움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한 길거리 공연을 마련했다.

첫 번째 공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인 제주어로 노래하는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의 제주어 노래 합창으로 시작되었다. 합창단은 ‘이어도사나’, ‘웃당보민&고치글라 고치가게’와 같은 제주어 노래를 부르고 ‘마마신을 물리친 제주해녀’와 같은 설화구연도 선보이면서, 자칫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제주어를 재기발랄한 율동과 신선한 퍼포먼스로 소개해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제주 어린이들로 구성된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이 제주어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의 뒤를 이어 성동구립소년소녀합창단은 피지와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전통민요를 토착어로 선보였다. 성동구는 유네스코 글로벌 학습도시로서 ‘모두를 위한 평생학습 증진’을 위한 실천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성동구립소년소녀합창단의 합창을 들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한다’는 유네스코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관 · 단체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거리 공연의 마지막은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의 아디카리(Adhikary) 씨가 장식했다. 방글라데시는 원래 파키스탄의 일부인 ‘동파키스탄’이었다가 독립한 국가다. 1952년 2월 21일, 서파키스탄의 벵골어 사용 금지정책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던 동파키스탄 주민들 중 4명이 경찰의 발포로 숨졌고, 이를 계기로 분리독립운동에 나선 동파키스탄은 1971년에 방글라데시라는 이름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이후 방글라데시는 2월 21일을 ‘언어 순교자의 날’로 기념하고 있으며, 1999년에 유네스코는 이날을 세계 모어의 날로 지정했다.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은 2018년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함께 ‘세계 모어의 날’ 기념 심포지엄을 공동 개최하는 등 꾸준히 협력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으며 이번 행사에도 흔쾌히 참여를 결정해주었다. 아디카리 씨는 방글라데시의 전통 악기 엑타라(Ektara)를 연주하면서 뛰어난 가창력으로 벵골어 노래를 불러, 지나가던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좌].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의 아디카리 씨가 벵골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 성동구립소년소녀합창단이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전통 민요인 '포카레카레 아나'를 합창하고 있다. 

 

소중한 유산이자 지혜의 그릇인 토착어 보호는 인류에게 중요한 이슈다. 세계 토착어의 해는 올 12월 31일자로 끝나겠지만, 언어와 문화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해 기억해야 할 우리의 의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라져 가는 토착어를 지키고, 언어의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유네스코의 발걸음에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해 주기를 바라 본다. 

 

 

김현규 커뮤니케이션팀 전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