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대사 인터뷰] 양방언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평화예술 홍보대사 2015-01-19 (조회수 4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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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6일, ‘에벌루션 2014’ (Evolution 2014) 한국 공연을 이틀 앞두고 양방언 유네스코한국위원회(한위) 평화예술 홍보대사를 만났다. 공연 직전 챙겨야 할 것도, 신경 쓸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이 ‘미중년’의 예술가는 새롭게 맡은 자신의 역할 앞에서 잠시나마 피곤함도 잊은 듯 보였다. 그의 생각 속에서 음악과 교육의 접점은 상상 이상으로 가까웠고, 평화예술 홍보대사직은 이미 단순한 타이틀이 아닌, 어떤 인연이나 운명으로 자리한 듯했다. 특히 한위가 펼치고 있는 지구촌 교육 나눔 활동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한위의 후원모금 CF에 그가 기부한 음악 ‘트레저스’(Treasures)처럼, 그와 한위의 만남이야말로 어쩌면 서로에게 “보물 같은 인연”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Q 지난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도, 올초 소치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도, 아리랑을 모티브로 한 음악을 들려주셨습니다. 아리랑은 음악가 양방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리랑이란 제게 딱 한 마디로 답하기 어려운 많은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연주하고 또 연주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랐지만 그땐 그저 흘려 들었던 음악이었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할 때도 큰 관심은 없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준비를 하며 비로소 ‘아리랑이란 것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그렇게 처음 아리랑이란 음악의 입구를 한 번 들여다보았고, 그 이후 몇 년 동안 아리랑이란 것이 내 안에서 계속 변해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게 더 매력적이었고요. 그래서 여전히 좀 더 알고 싶어요. Q 평화예술 홍보대사 위촉식 때 “30년 음악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30여 년간 음악활동을 하면서 음악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제 역할이 있으리라 생각해왔습니다. 또한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마침 이런 계기, 또는 인연이라 할 만한 기회가 생긴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제게 어떤 역할이 주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혼자 힘은 작지 않습니까? 제가 공연을 할 때도 저 혼자 피아노를 쳐서는 제약이 많지만, 수많은 스태프들과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무대 위에서 폭발시킬 때 뭔가 새로운 것이 탄생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제가 맡을 역할을 통해 다른 분들을 만나고, 자극을 받고, 또 새로운 생각을 얻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Q 한위는 내년 유네스코 총회 때 파리 본부에서 ‘고은 시인의 평화를 위한 특별시 낭송회’를 열 계획입니다. 이때에도 음악으로 참여하실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모든 일에 그렇게 만남이 있어야 시작이 있으니까요.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매우 긍정적으로 임해 보고 싶습니다. 또한 그렇게 커다란 일이 아니더라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할 수 있는 일들에 관해 궁리해 보았으면 합니다. 작은 것들부터 한 걸음씩 걸어가서 결국 나중에 매우 큰 일들로 이어지게 되는, 그런 과정에 대해 한국위원회와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싶습니다. Q 선생님께선 조총련계 중학교를 나와 일본 고등학교에 다니고, 의과대학을 나와 음악의 길을 택하셨는데, 다양한 교육 환경을 접해본 경험자로서 교육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교육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낍니다. 조총련계 중학교에서 제가 배웠던 것은, 아주 흡족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일본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충격을 받았지요. 제가 몰랐던 상식들이 너무나 많았으니까요. 왜 여태껏 그런 교육을 받아야 했는지, 현실이 미웠습니다. 환경에 따라 얼마나 차이가 날 수 있는지, 제대로 교육을 받을 때 아이들이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됐고, 그런 차이는 없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교육나눔이라는 비전에 대해 내 안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것이 저와 한국위원회가 만들어 갈 시너지의 출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난관을 딛고 결국 음악가란 꿈을 이뤄 낸 사람으로서, 꿈을 가진 어린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이, 젊은 분들도 포함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입구는 각자의 안에 많이 있습니다. 꿈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그게 바로 입구이지요. 무서워하지 말고 그 입구에 한번 들어가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들어가서 보고 느끼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인연이나 계기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인생이란 그렇게 찾아오는 순간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순간을 붙잡을 수 있는 자신의 재능이나 감각, 그것이 저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람들은 평등해요. 각자의 앞으로 기회가 몇 번씩 찾아 오게 되거든요. 준비가 돼 있으면 반드시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단, 하다가 그만두는 것은 없어야 합니다. Q 그런 꿈의 입구를 마련해 주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 아닐까요.
입구를 마련한다기보다는 입구를 인식시켜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입구는 누구에게나 눈앞에 다 있어요. 그게 있다는 걸 모를 뿐이죠. 그 입구로부터 어린이들이, 청소년들이 목표를 향해 마음껏, 즐기면서 가기를 바랍니다. 문이 무겁다면 같이 밀어 주고, 그렇게 도와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일이지요. 또한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에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 ‘한위 평화예술 홍보대사’로서 활약이 기대됩니다.
저의 음악이 언어를 통해 할 수 없는 것들, 예컨대 오해와 갈등 같은 말로 인한 부작용이랄까, 그런 틈을 메워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무슨 일이든 핵심은 “감동”입니다. 감동은 힘을 갖고 있고, 감동은 사람을 움직입니다. 감동이 있을 때는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습니까? 그럴 때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일을 하면서 감동이 있어야 영감도 떠오릅니다. 그것이 저에게 힘이 되고 곡을 쓰게 만들지요. 철저히 계획을 세워 접근한다기보다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좋은 영화나 책을 보며 눈물을 흘리듯, 자연스레 빠져들며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김보람 편집위원
제주가 고향인 아버지와 신의주가 고향인 어머니 사이에서 재일한국인 2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우고 음악가의 꿈을 품었으나, 의사인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일본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의대 졸업 후 대학병원에서 1년간 마취의사로 근무했지만, 결국 그가 택한 것은 자신의 오랜 꿈인 ‘음악’이었다. 의과대학 재학 때 이미 여러 아티스트들의 키보디스트로 음악계에 첫발을 딛었던 그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프로 뮤지션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일본 대중음악계의 신화적인 존재 ‘하마다 쇼고’, 홍콩의 전설적인 록밴드 ‘비욘드’ 의 앨범 프로듀서로 활약하는 등 일본과 아시아 지역 팝 아티스트의 앨범 작업과 공연에 다수 참가했다. 1996년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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