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대사 인터뷰] 임형주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평화예술 친선대사 2015-01-19 (조회수 4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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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주라는 이름 석 자는 여러모로 특별하다. 세계적인 팝페라 테너로서 그가 이룬 음악적 성취는 차치하고라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는 한 사회의 리더로서 특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 그가 유네스코한국위원회(한위)와 손을 맞잡았다. 여러 NGO 단체의 홍보대사로 활약해온 그에게도 한위의 첫 평화예술 친선대사직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 듯하다. 지난 12월 18일,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열린 위촉식 자리에서 그는 ‘얼굴마담’이 아닌 ‘활동가’로서의 자신을 지켜봐 달라고 했다. 자신 있다고도 했다. 당당하고도 자신감 넘치는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그의 기사를 <유네스코뉴스>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Q 위촉식 때 말씀을 너무나 잘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선, 평화예술 친선대사로서 첫 발을 내딛은 소감이 궁금합니다.
말을 너무 노련하게 잘하면 “입만 살았다”는 말을 들을까 봐, 요즘은 오히려 어눌하게 하려고도 합니다(웃음). 제 의견을 피력하는 걸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렇게 추운 날, 많은 한위 식구들이 위촉식장을 찾아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일단은 감개무량하다는 표현이 제일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간 해 왔던 NGO 단체가 아닌, UN 산하 기구로서 전 세계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유네스코의 한국위원회와 함께 뜻깊은 일을 하게 되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Q 2015년 새해에는 어떤 소망을 품고 계십니까.
아이들에게 꿈을 많이 주고 싶습니다. 평화예술 친선대사로서 자선공연도 많이 하고 싶고, 수익금을 기부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제가 잘 할 수 있는 예술로써, 음악으로써 봉사를 하고 함께 나누고 싶다는 게 제 소망입니다. 거창하게 무슨 경기장 같은 데서 하는 공연보다, 작고 내실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고 싶어요. (인터뷰 도중 지난 11월 한위 평화예술 홍보대사로 위촉된 음악가 양방언 씨와의 합동 자선공연 가능성에 대해 은근히 운을 떼봤다. 그는 “양방언 선생님을 잘 알고 있다”며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고 밝혔다. 이들 두 사람은 수년 전 서로의 콘서트에 특별 게스트로 출연해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한 인연도 있다.) Q 늘 앳된 모습의 ‘어린왕자’ 같은 예술가였는데, 어느덧 서른 문턱에 가까이 왔습니다. 삶이나 음악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 예전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께 외람된 말씀일 수도 있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한 살 들어갈수록 “세상 성공은 참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성공의 기쁨은 정말 찰나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신에 나눔 활동을 하면서 또 다른 기쁨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어요. 제가 주는 것보다 오히려 제가 (그들로부터) 받는 것이 더 크다는 걸 더 잘 알게 된 거죠. 그간 개인적으로 아프리카의 헐벗은 아이들을 위해 노력해왔는데, 먹을 것을 주고 질병을 예방하고 하는 것들과 별개로, 아이들이 꿈을 이룰 권리, 배울 수 있는 권리를 찾도록 해 주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일까 생각해봤어요. 그런 아름다운 일에 더 많이 참여를 하고 싶었고, 이렇게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연이 닿게 되었습니다. Q 그러한 심경의 변화가 음악에도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을까요.
지금의 저는 말하자면 사람들이 말하는 “신동”에서 “대가”로 갈 수 있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재, 신동의 이미지로 계속 남을 것이냐, 아니면 구름 위로 더 올라가서 대가로 남을 것이냐 하는 중요한 진입로인 것 같아요. 저는 대중들과 함께 교감하고 호흡하고 싶어서 팝페라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팝페라조차 대중들에게는 고고하고 우아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어요. 어딘가 어려운 음악이 되어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지금 저는, 얼마 전 모 일간지 인터뷰 제목처럼, ‘팝페라 어렵나요? 그럼 앞으로 가요도 불러드릴게요’ 하는 생각으로 한 발 더 대중에게 다가가려 합니다. 여러분들과 더 가까이서 함께 호흡하고 싶어요. Q 음악뿐 아니라 봉사 등 사회 활동에도 열심이십니다. 신문을 열 다섯 개나 꼬박꼬박 구독하고, 일간지 칼럼니스트 활동도 하고 계시고요. 예술가로서 사회적 참여에 대한 책임을 크게 느끼시는 편인가요.
다들 아시다시피 미국의 할리우드 스타들은 정치사회적인 의사표현을 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적 발언마저 정치적인 색깔로 비칠 수도 있지만, 트위터 같은 공간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꾸준히 남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업이 아니라서 그런지 글 쓰는 게 전 즐겁습니다. 글을 쓰며 ‘힐링’도 되고요. 그렇게 세상을 저 혼자서는 바꿀 수 없어도, 바꾸는 데 일조는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Q 글 쓰는 게 행복하시다면, <유네스코뉴스>에서도 원고를 청탁드려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꼭 청탁해 주세요!(웃음) Q 임 친선대사의 경우, 서른 전에 이미 꿈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반면 아프리카의 많은 아이들처럼 세상에는 꿈을 가질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조언이나 메시지를 전해주신다면.
비록 지금 말도 안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안 꾸는 것보다는 꾸는 게 훨씬 더 나은 게 바로 꿈 아닐까 생각합니다. 꿈을 갖고 있으면 그걸 실현하기 위해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게 돼 있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그 꿈을 꼭 쟁취하진 못할지라도 가까이는 갈 수 있으니까요. 삶의 원동력이란 그런 데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정해 주는 성공이란 손에 꼽힐 정도인데요, 저는 이 세상에 천 명의 사람이 있다면 성공의 개수도 천 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성공한 인생이잖아요? 세상에 태어날 소중한 기회를 받은 것이니까요.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정의 내리는 성공만을 좇는 것 같아요. 경쟁에서 이기고 돈을 많이 버는 것, 그것이 성공일 수는 있겠지만 그 성공이 과연 행복을 가져다주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Q 끝으로 독자들과 어린 친구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배울게 많이 남은 저 임형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제가 걸어온 길에서 동기를 얻고 꿈을 얻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저도 더 열심히 앞으로 나아갈 테니 그런 저를 자극제로 삼으셔서 더 큰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1998년 만 12세의 나이로 첫 독집 음반을 발표하며 ‘성악 신동’으로 국내외 음악계의 큰 주목을 받았으며, 2003년 팝페라테너로 정식 데뷔했다.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16대 대통령 취임식 애국가를 선창한 것을 시작으로 2003년 6월 뉴욕 카네기홀에서 세계 남성 성악가 사상 최연소 독창회 개최, 2012년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역대 최연소 단독 콘서트 개최 등, 그는 ‘최초’와 ‘최연소’ 기록들을 수시로 갈아치우며 강렬한 음악 활동을 펼쳐 왔다. 뿐만아니라 월드컵 기념 콘서트, 서울 G20정상회의 경축음악회, 한국전쟁 60주년 기념공연, 여수엑스포 축하공연 등 대표적인 국가적 행사들에도 수십 차례 초청되어 성공적인 공연을 펼쳤다.
여기에 더해 그의 광범위한 사회봉사활동들은 음악인 임형주를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스타’ 이상의 ‘명사’로서 자리매김토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 월드비전 홍보대사 등을 맡아 각종 단체의 활동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었으며, 2008년 1월에는 세계 데뷔 5주년 및 국내 데뷔 10주년을 맞아 그간 벌어들인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여 저소득층 예술 영재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비영리재단인 ‘아트원 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경향신문,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유력 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하고 자문을 맡는 등 오피니언리더로서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도 적극적인 그는 자전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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