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대사 인터뷰] 박지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평화예술 친선대사 2015-04-01 (조회수 4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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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일 유네스코한국위원회(한위) 평화예술 홍보대사로 위촉된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씨는 인터뷰 촬영이 약속된 날에도 방송국에서의 리허설 일정으로 하루 종일 바빴다. 리허설 중간, 잠시 쉴 수 있는 틈에도 촬영을 요청한 <유네스코뉴스>에 환하게 웃어 보인 그녀는 소문난 ‘흥’의 예술가답게 앞으로의 홍보대사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막중한 직분에 어깨가 버거워지는 것 같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선한 영향력을 펼치겠다”며 주어진 역할에 감사를 표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평화예술 홍보대사를 맡아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지구촌 교육나눔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한위로서는 ‘교도소 힐링 콘서트’를 해 오시는 등 사회봉사 활동에서 자신만의 철학과 신념을 보여주신 박지혜 대사께 큰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사실 나눔과 봉사활동은 제가 가장 힘들 때 절 살렸던 방법 중에 하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면서, 그 통로가 되는 제게는 더 큰 기쁨과 위로가 돌아온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디어를 통해 이런 부분이 좀 왜곡되어 전달된 부분에 실망한 적도 없진 않았어요. ‘봉사활동만 하는 선교자’의 이미지만 부각된다든지, 교통비 정도만 받는다는 이유로 음향시설 같은 연주를 위한 기본 준비를 전혀 안 해둔 채 공연을 요청한다든지 하는 일들이 있었거든요. 좋은 일을 한다는 보람 이전에 예술가로서 받은 서러움 같은 게 있었어요. 그 이후부턴 나눔을 하면서도 저만의 기준과 룰을 정하게 되었어요. 좋은 일이란 명분 아래서 스스로 상처 입고 아프면 안 되잖아요. 좋은 일이기 때문에, 그걸 더 즐겁게 더 오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그 일이 제 삶에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고요. 음악가로서 승승장구하다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과 극복 스토리도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실의에 빠져 있거나, 삶의 목표를 잃고 주저앉은 이들이 곁에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제가 음악을 통해 나눔을 하는 건,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바이올린을 켜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이 하는 방법을 따라해 보는 것도 좋지만, 나만의 방법을 찾을 때 그 행복이 몇 배가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는 건 어떨까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이기에, “나는 안 돼”라는 회의가 들 때나 어떤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도 내 삶에 에너지와 목적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국내에선 ‘우울증 잡는 바이올리니스트’, ‘흥 바이올리니스트’ 등 뭔가 ‘엔터테이너’로 부각되는 경향도 일부 있는데, 클래식 예술가로서 부담스러운 점은 없는지요.
물론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점보다 그런 부분이 더 부각된다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우울증 잡는 바이올리니스트’, ‘흥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수식어 안에도 ‘바이올리니스트’란 말은 빠지지 않잖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의 왜곡이 있을 수 있더라도, 궁극적으론 다시 전문 클래식 예술가로서 부각되리라 생각하며 오히려 감사해요. 정통 클래식 연주가로서는 이례적으로, 록뿐만 아니라 가요, 그리고 트로트까지 클래식과 대중 음악을 누구보다도 활발히 접목하고 계신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는 늘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겠다고 꿈 꾸고 다짐해 왔어요. 그래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가지 않던 곳에서도 연주하면서 어떤 선입견과 제한을 버리고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음악이 얼마나 강력한 소통의 힘을 가진 언어가 될 수 있는지 깨달았고 지금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장르’라는 건 사람이 만들어 놓은 거예요. 반면에 ‘음악’은 인류가 생긴 이래 언제나 함께 했던 본질이에요. 말하자면 음악은 언어고, 장르는 말의 높낮이나 리듬 같은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전 제가 무대에서 단순히 악보를 연주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아요. 사명감을 갖고 달려오며 찾아낸 나만의 메시지를 온 힘과 진심을 담아 열변을 토하고 있는 거죠. 그 열변이 대중들에게 가 닿으려면? 바로 대중의 시선에 맞춰 얘기를 해야 해요. 그런데 대중이 듣는 음악이 백 퍼센트 클래식이 아닌데 어떻게 클래식만 고집하 겠어요? TV에서 나오는 음악, 컬러링으로 나오는 음악, 유치원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등 대중이 소통하는 음악은 저마다 다른 걸요. 그 모든 걸 통틀어 우린 음악이라 하고, 저는 그 음악을 통로 삼아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니 할 수 있는 모든 걸 아울러 연주할 수밖에요(웃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자랑스러운 우리의 아리랑을 ‘지혜아리랑’으로 연주하셨는데요, 그 외 다른 우리 유산으로 또 다른 변주를 해볼 계획은 없는지요.
물론 있습니다! 지금까지 6곡 정도 한국 고유 음악을 바이올린으로 편곡하여 연주했어요. 한국의 아름다운 선율, 한국인의 영혼과 얼이 살아 숨 쉬는 이 노래들을 전 세계에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그것도 서양인들에게 ‘고급스럽다’고 표현되는 친숙한 악기인 바이올린으로요! 저도 독일에서 나고 자랐지만 막상 한국에 와보니 젊은 세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우리의 선율을 잊고 살아오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우리의 선율을 젊은 층 감각에도 맞는 유니버셜한 음악으로 풀어 한국의 젊은 세대에는 긍지를, 기성 세대에는 향수와 힐링을 선사하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도 틈틈이 편곡 작업을 하고 있답니다. 끝으로 새해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더 활발히, 즐겁게, 그리고 귀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이번에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국제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도 초청을 받았어요. 그 말은 저는 더 이상 ‘넥스트 제너레이션’이 아닌, ‘또 다른 넥스트 제너레이션’을 위해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 책임을 져야 할 성인이란 뜻이거든요. 그래서 평생 이어온 음악 활동 외에도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는 성인이 되고 싶어요. 물론 유네스코와 함께, 유네스코를 위해 얼마나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을지도 무척 기대됩니다!
독일에서 태어나 자란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씨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결코 어색하지 않은 길을 걸어온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자다. 역시 바이올리니스트인 어머니의 지도 아래 시작한 바이올린 연주는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4세 때 대학을 조기 입학해 졸업한 뒤 독일 정부 지원 전액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특히, 2003년 독일 예술부 장학기관이 시행하는 악기대여 오디션을 통과, 세계 3대 명기 중 하나인 1735년산 페투르스 과르네리를 무상지원 받은 뒤 11년째 사용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성공가도만 달리다 우울증을 앓기도 했으나 음악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그 경험을 교도소, 소록도, 군부대 등에서의 연주를 통해 대중과 나누어 왔다. 2013년 TED 컨퍼런스에 한국대표 연사자로 초청받아 뛰어난 어휘력과 음악이 어우러진 강연 쇼로 세계적 찬사를 받기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빼어난 재능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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